내 생활 계획표 속엔
이봉직
우리가 어렸을 적엔
한문밖에 배울 게 없었지.
할아버지 말씀.
우리가 학교 다닐 땐
영어 잘 하는 친구가
최고 부러웠지.
아버지 말씀.
이젠 컴퓨터를 모르면 안 되지
삼촌 말씀.
그러나
내 생활 계획표 속엔
어린이 한문교실
어린이 영어교실
어린이 컴퓨터 학원
미술 학원 음악 학원
모두 들어 있다.
모르면 바보가 된다고
내 생활 계획쵸 속에
다 들어 있다.
-----------------------------
전자계산기
김 현
얼마나 편하니?
살짝 누르기만 하면
알아서 다 해 주는걸.
요건 더하고 조건 나누고
마음대로 원하는 대로
우리 마음에도 하나 달까?
걱정거리 소수점 문제엔
- 눌러 소수점 떼내고
몸에 꽉끼는 마음 치수는
넉넉하게 얼마쯤 +
참, 그리고 잊지 마
÷ 자주 누르면서
요것조것 따지기 없기
기쁜일, 좋은일엔
× 마구 눌러주기
--------------------------
낙엽
한 잎 두 잎 나뭇잎이
낮은 곳으로
자꾸 내려앉습니다
세상에 나누어줄 것이 많다는 듯이
나도 그대에게 무엇을 좀 나눠주고 싶습니다
내가 가진 게 너무 없다 할지라도
그대여
가을 저녁 한때
낙엽이 지거든 물어보십시오
사랑은 왜
낮은 곳에 있는지를
---------------------------------
벙어리 장갑
임 정 수
다섯이서 같이 살기
너무 좁아서
엄지손가락 혼자
살고 있어요.
엄지손가락 혼자
무섭지만
바로 옆의 형들
지켜주고 있어요.
------------------------------
우정
- 정호승
내 가슴속에
결코 지워지지 않는 글씨 하나 있다
과수원을 하는 경숙이 집에 놀러갔다가
아기 주먹만한 크기의 배의 가슴에다
머리핀으로 가늘고 조그맣게 쓴 글씨
맑은 햇살에
둥글게 둥글게 배가 커질 때마다
커다랗게 자란 글씨
우정
--------------------------------------
콩, 너는 죽었다
김용택
콩타작을 하였다
콩들이 마당으로 콩콩 콩콩 뛰어나와
또르르르르 또르르르르
또르르르르 또르르르르
굴러간다 굴러간다
콩 잡아라 콩 잡아라
굴러가는 저 콩 잡아라
콩 잡으러 가는데
어, 어, 저 콩 좀 봐라
쥐구멍으로 또르르르르
쏘옥 쏘옥 들어가네
콩, 너는 죽었다
'문학 : 하루 한 문장'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용혜원 시 2 (0) | 2020.12.11 |
---|---|
용혜원 시 (0) | 2020.12.10 |
좋은시(달밤,흑인죠,설야,가을그대,운명을운전하다) (0) | 2020.12.08 |
좋은시 (작약꽃필무렵,코스모스,머리를감으며,고해,연애) (0) | 2020.12.07 |
좋은시(별,엄마야누나야,하여가, 천년의사랑, 데생) (0) | 2020.12.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