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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 하루 한 문장

나태주 - 시집 나는 사랑이라는 말을 이렇게 쓴다

 

마당을 쓸었습니다

지구 한 모퉁이가 깨끗해졌습니다

 

꽃 한 송이가 피었습니다

지구 한 모퉁이가 아름다워졌습니다

 

마음속에 시 하나 싹텄습니다

지구 한 모퉁이가 밝아졌습니다

 

나는 지금 그대를 사랑합니다

지구 한 모퉁이가 더욱 깨끗해지고

아름다워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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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

 

내가 외로운 사람이라면

나보다 더 외로운 사람을

생각하게 하여 주옵소서

 

내가 추운 사람이라면

나보다 더 추운 사람을

생각하게 하여 주옵소서

 

내가 가난한 사람이라면

나보다 더 가난한 사람을

생각하게 하여 주옵소서

 

더욱이나 내가 비천한 사람이라면

나보다 더 비천한 사람을

생각하게 하여 주옵소서

 

그리하여 때때로

스스로 묻고

스스로 대답하게 하여 주옵소서

 

나는 지금 어디에 와 있는가?

나는 지금 어디로 향해 가고 있는가?

나는 지금 무엇을 보고 있는가?

나는 지금 무엇을 꿈꾸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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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수유꽃 진 자리

 

사랑한다, 나는 사랑을 가졌다

누구에겐가 말해주긴 해야 했는데

마음 놓고 말해줄 사람 없어

산수유꽃 옆에 와 무심히 중얼거린 소리

노랗게 핀 산수유꽃이 외워두었다가

따사로운 햇빛한테 들려주고

놀러 온 산새에게 들려주고

시냇물 소리한테까지 들려주어

사랑한다, 나는 사랑을 가졌다

차마 이름까진 말해줄 수 없어 이름만 빼고

알려준 나의 말

여름 한 철 시냇물이 줄창 외우며 흘러가더니

이제 가을도저물어 시냇물 소리도 입을 다물고

다만 사수유꽃 진 자리 산수유 열매들만

내리는 눈발 속에 더욱 예쁘고 붉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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