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문학 : 하루 한 문장

이미 망한 생 - 박상우 시집

이미 망한 생 - 박상우 시집

 

진달래꽃

 

터질 듯 말 듯하다가

영원히 터지지 않을 것 같았던 꽃봉일 떼

어느새

모두 폭발하고

 

질 듯 말 듯하다가

영원토록 피어 있을 것 같았던 진달래꽃 무리

어느덧

모두 시들었네

 

내게서 없어져

내 속에 남은 진달래

온 누리에 하나뿐인 진달래가 아니길

 

-----------------------------------

 

용꿈을 꾼 후

 

꿈속, 멋있는 용이 애드벌룬처럼 높이 떠 있었다

아니,용 모습의 애드벌룬이 공중에 높이 떠있었다

 

용꿈을 꿨는지

개꿈을 꿨는지 헛갈린 나는

난생처음 용꿈을 꿨다고 믿고

이틀 후, 애드벌룬처럼 부푼 꿈을 안고경마장에 갔다

그런데 돈이 홍당무로 변해 말먹이가 되었다

 

난 지금부터

용굼도 개꿈도 믿지 않고

나를 믿으리라

꿈꾸는 나에 대하여 열심히 해몽을 하리라

 

 

--------------------------------------------------

 

 

 

이미 망한

 

어느 날

어린 나이에 자살한 배우가 나오는 영화를 보았다

 

그녀가 말을 하며 환하게 웃는다

生生하다

또 그녀가 노래를 부르는 모습도

생생하다

 

화면 속의 그녀는

무던 속의 그녀가

벗어놓은, 욕망의 허물이지만

생상한 알맹이 같고

현실 속의 나는

숨을 쉬는 알맹이지만

이미 망한 속에 있어,

데드마스크를 쓰고 있는

허물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