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문학 : 하루 한 문장

마음에게 말걸기 - 대니얼 고틀립/문학동네

마음에게 말걸기 - 대니얼 고틀립/문학동네

 

 

스프링

- 상처를 딛고 일어서는 마음의 힘

아이들은 내게 사랑에 대해 가르쳐주었다

스프링처럼 탄력있는 아이의 영혼을 믿는 순간 사랑은 훨씬 더 쉬워진다는 것을.

 

범퍼 스티커에 이런 문구가 쓰여있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정신병은 유전된다. 아이에게서 어른으로, 우리는 아이들 때문에 정신병을 얻는다.” 이 말도 어느 정도는 수긍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그 반대 역시 사실이다. 우리는 아이들에게서 아주 많은 교훈을 얻을 수 있다.

...

아이들은 놀랍도록 적응력이 빠르다. 여느 부모들처럼 나도 우리 딸들이 과연 이 거친 세상을 잘 헤쳐갈 수 있을지 늘 걱정하며 살았던 것 같다. 하지만 나는 그들이 항상 내 기대 이상으로 모든 일을 잘 해낸다는 사실 또한 알게 되었다. 아이들은 내게 적응에 대해. 치유에 대해. 또 희생에 대해 크고 작은 진리들을 가르쳐주었다.

사고가 난 후 나는 몇 달간 병원에 입원했다. 집으로 돌아왔을 때 딸들은 아빠가 있는 침대 곁으로 다가와 꼬물거리고 놀았다. 둘 다 아직 꼬마였지만 나는 침대에 묶여 있는 내 상태가 마음에 걸렸고 아이들이 내 소변주머니를 볼까봐 걱정이 되기도 했다. 나는 아이들이 아직 그런 것들을 몰랐으면 했다. 딸아이가 방으로 들어오려 할 때면 나는 소변주머니를 얼른 담요로 가리곤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마음이 느긋해졌고 굳이 소변주머니를 가리지 않게 되었다. 아이들은 침실에 들어올 때마다 내 침대 옆의 주머니를 보게 되었다. 아이들이 본 것은 확실했지만 아무도 그것에 대해 얘기하지 않았다. 나는 아이들이 그것을 이상하게 여기는지 아닌지 알 길이 없었다.

어느날 아침은 늦잠을 자고 일어났더니 알 리가 벌써 방에 들어와 있었다. 알리는 내 침대 옆에 앉아서 그 소변주머니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눈르 뜨자 알 리가 말했다. 좀 놀란 목소리였다. “아빠, 밤새 오줌통이 넘치도록 오줌을 눴네.” 두 딸 모두 적응에 대해 아주 많은 것을 가르쳐주었다. 엄마 샌디가 항암치료를 받고 있을 때 아직 아기였던 데비는 엄마의 무릎에 앉아 있곤 했다. 오늘까지도 데비는 구토와 병균을 무서워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데비는 내가 이제까지 본 엄마들 중에 가장 존경스럽고 훌륭한 엄마가 되어있다. 데비는 언제 어디서나 무한한 사랑과 환희를 찾아낼 줄 아는 아이였다. 시간이 흐르면서 그 상처는 치유되었고 흉터만 조금 남았을 뿐이다.

알리의 어린 시절은 늘 동물들로 넘쳐났다. 알리는 사람보다 동물을 더 믿었다. 어른들은 마음르 아프게 했지만 동물은 절대 자신을 상처주지 않았기 때문이리라. 알 리가 두 살 정도 되었을 때 엄마는 암 치료 때문에 거의 일 년 간 엄마 노릇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다섯 살이 되었을 때는 아빠가 일 년 동안 병원 신세를 지게 되었다. 이렇게 거듭된 부모의 병과 치료에도 불고하고, 아니 어쩌면 그것 때문에 아이는 커서 존경받는 수의사가 될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우리 집안에서 일아난 모든 불행과 고난으로부터 아이들을 지킬 수만 있다면 당연히 그렇게 했을 것이다. 두 아이 모두 부모의 병과 엄마의 죽음으로 깊은 상처를 입었다. 게다가 아이들이 10대가 되었을 때 우리 부부는 이혼을 했다. 아이들의 가슴에는 아직까지도 보이지 않는 상처가 남아 있을지 모른다. 요즈음에도 그 생각을 하면 마음이 찢어지는 것만 같다. 하지만 아이들 쪽에서 먼저 그 이야기를 꺼내진 않는다.

la으로 되는 것이었다면 절대로 알리와 데비에게 그런 아픔과 상처로 얼룩진 어린 시절을 안겨주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가끔은 거틍로 좋다 나쁘다 따져서 그 결과를 속단할 수 없는 것이 인생인 듯 하다. 어떤 사건이 우리 삶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아이들은 그들이 내가 이끌어주는 길이 아닌 자신들이 선택한 특별한 길을 걷고 있다는 것을 가르쳐주었다. 그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는 것이 얼마나 큰 기쁨인지 모른다. 나는 알 리가 내 건강문제에 대해 조언을 해줄 때마다 한없는 보람과 기쁨에 사로잡히고 데비가 내 서툰 신문 칼럼을 봐줄 때마다 감동에 겨워 어쩔 줄을 모른다. 늘 보살피던 아빠에서 보살핌을 받는 아빠로, 우리의 부녀관계가 역전되었다는 것을 느낄 때 무척 흥분된다. 나는 물론 아직도 아이들을 챙기고 걱정하지만 이제 그들도 나와 똑같은 입장이다. 내가 이스라엘의 인티파다에 갔을 때나 그랜드 캐니언에서 헬리콥터를 탔을 때 아이들이 기절할 듯 놀라를 걱정해주었고 나는 그런 상황이 내심 기뻤다. 나는 아이들에게 너희가 사춘기 때 속 썩인 것에 대한 복수라고 말하고 아이들은 내게 이렇게 잔소리를 했다.“제발, 아바 참아주세요. 아빠가 할 수있다고 해서 꼭 해야 되는 건 아니라니까요.”

그렇다. 우리 아아들은 분명 어린 시절 겪지 않아도될 고통을 겪었고 상처를 입었다. 나는 안타깝게도 아이들에게 항상 안정적이고 행복한 환경을 마련해주지 못했다. 하지만 아이들을 보호해주지 못한 이 무능한 아빠는 늘 아이들 앞에 고개 숙여 배운다. 그렇게 힘들게 자랐으면서도 이 아이들은 어른들보다 훨씬 잘 적응했곳 살아남았고, 그것도 매우 훌륭하게 살아남았다. 아이들은 내게 사랑에 대해 가르쳐주었다. 스프링처럼 탄력 있는 아이들의 영혼을 믿는 순간 사랑은 훨씬 더 쉬워진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