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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 하루 한 문장

좋은시(춘신,행복)

춘신 / 유치환


꽃등인 양 창 앞에 한 그루 피어오른

살구꽃 연분홍 그늘 가지 새로

작은 멧새 하나 찾아와 무심히 놀다 가나니.



적막한 겨우내 들녘 끝 어디에서

작은 깃 얽고 다리 오그리고 지내다가

이 보오얀 봄길을 찾아 문안하여 나왔느뇨.



앉았다 떠난 아름다운 그 자리 가지에 여운 남아

뉘도 모를 한 때를 아쉽게도 한들거리나니

꽃가지 그늘에서 그늘로 이어진 끝없이 작은 길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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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 / 유치환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 보다 행복하느니라

오늘도 나는

에머랄드빛 하늘이 환히 내다뵈는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행길을 향한 문으로 숱한 사람들이

제각기 한 가지씩 생각에 족한 얼굴로 와선

총총히 우표를 사고 전보지를 받고

먼 고향으로 또는 그리운 사람께로

슬프고 즐겁고 다정한 사연들을 보내나니.



세상의 고달픈 바람결에 시달리고 나부끼어

더욱더 의지삼고 피어 흥클어진

인정의 꽃밭에서

너와 나의 애틋한 연분도

한방울 연연한 진홍빛 양귀비 꽃인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 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너에게 편지를 쓰나니

 

그리운 이여 그러면 안녕 !

설령 이것이 이세상 마지막 인사가 될지라도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