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바라기의 비명(碑銘) -청년 화가 L을 위하여 -함학수-
나의 무덤 앞에는 그 차거운 비(碑)ㅅ돌을 세우지 말라.
나의 무덤 주위에는 그 노오란 해바라기를 심어 달라.
그리고 해바라기의 긴 줄거리 사이로 끝없는 보리밭은 보여 달라.
노오란 해바라기는 늘 태양같이 태양같이 하던 화려한 나의 사랑이라고 생각하라.
푸른 보리밭 사이로 하늘을 쏘는 노고지리가 있거든 아직도 날아오르는 나의 꿈이라고 생각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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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체념 -김달진-
봄 안개 자욱히 내린
밤 거리 가등(街燈)은 서러워 서러워
깊은 설움을 눈물처럼 머금었다.
마음을 앓는 너의 아스라한 눈동자는
빛나는 웃음보다 아름다워라.
물겨가고 오는 사람 구름처럼 흐르고
청춘도 노래도 바람처럼 흐르고
오로지 먼 하늘가로 귀 기울이는 응시
혼자 정열의 등불을 다룰 뿐
내 너 그림자 앞에 서노니 먼 사람아
우리는 진정 비수(悲愁)에 사는 운명
대채로운 행복을 삼가하오.
견디기보다 큰 괴로움이면 / 멀리 깊은 산 구름 속에 들어가
몰래 피었다 떨어진 꽃잎을 주워 / 싸늘한 입술을 맞추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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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미 -송욱-
장미밭이다 / 붉은 꽃잎 바로 옆에 / 푸른 잎이 우거져
가시도 햇살 받고 / 서슬이 푸르렀다.
벌거숭이 그대로 / 춤을 추리라 / 눈물에 씻기운
발을 뻗고서 / 붉은 해가 지도록 / 춤을 추어라.
장미밭이다 / 피멍울 지면 / 꽃잎이 먹고
기진하며는 / 가시마다 살이 묻은 / 꽃이 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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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 오는 창 -송욱-
비가 오면 / 하늘과 땅이 손을 잡고 울다가
입김 서린 두 가슴을 / 창살에 낀다.
거슴츠레 / 구름이 피고 가는 눈물 자욱은
어찌하여 / 쉴 새 없이 몰려드는가
비가 오면 / 하늘과 땅이 손을 잡고 울다가
이슬 맺힌 두 가슴으로 / 창살에 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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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묵화(墨畵) -김종삼-
물 먹는 소 목덜미에 / 할머니 손이 얹혀졌다.
이 하루도 함께 지났다고, / 서로 발잔등이 부었다고
서로 적막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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