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다림 -모윤숙-
천 년을 한 줄 구슬에 꿰어
오시는 길을 한 줄 구슬에 이어 드리겠습니다.
하루가 천 년에 닿도록 / 길고 긴 사무침에 목이 메오면
오시는 길엔 장미가 피어 지지 않으오리다. / 오시는 길엔 달빛도 그늘지지 않으오리.
먼 먼 나라의 사람처럼 / 당신은 이 마음의 방언을 왜 그리 몰라 들으십니까?
우러러 그리움이 꽃 피듯 피오면 / 그대는 저 오월강 위로 노를 저어 오시렵니까?
감추인 사랑이 석류알처럼 터지면 / 그대는 가만히 이 사랑을 안으려나이까?
내 곁에 계신 당신이온데 / 어이 이리 멀고 먼 생각의 가지에서만
사랑은 방황하다 돌아서 버립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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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 -윤동주-
잃어버렸습니다. / 무엇 어디다 잃었는지 몰라
두 손의 호주머니를 더듬어 / 길에 나아갑니다.
돌과 돌은 끝없이 연달아 / 길은 돌담을 끼고 갑니다.
다문 쇠문을 굳게 닫아 / 길 위에 긴 그림자를 드리우고
길은 아침에서 저녁으로 / 저녁에서 아침으로 통했습니다.
돌담을 더듬어 눈물짓다 / 쳐다보면 하늘은 부끄럽게 푸릅니다.
풀 한 포기 없는 이 길을 걷는 것은 / 담 저쪽에 내가 남아 있는 까닭이고
내가 사는 것은 다만 / 잃은 것을 찾는 까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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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던 길 멈추고 <마의태자의 묘를 지나며> -김해강-
골짝을 예는 / 바람결처럼
세월은 덧없어 / 가신 지 이미 천 년.
한은 길건만 / 인생은 짧아
큰 슬픔도 지내나니 / 한 줌 흙이러뇨.
잎 지고 / 비 뿌리는 저녁
마음 없는 산새의 / 울음만 가슴 아파
천고에 씻지 못할 한 / 어느 곳에 멈추신고.
나그네의 어지러운 발끝에 / 찬 이슬만 차여.
조각 구름은 / 때없이 오락가락하는데
옷소매를 스치는 / 한 떨기 바람.
가던 길 / 멈추고 서서
막대 짚고 / 고요히 머리 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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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안에 혓는 촛불 눌과 이별하엿관데
것츠로 눈믈 디고 속 타는 줄 모로도다.
뎌 촉불 날과 갓트여 속 타는 줄 모로도다. -이개-
* 천만 리 머나먼 길헤 고온 남 여희옵고
내 마음 둘 데 업셔 냇가의 안쟈시니
져 믈도 내 안 갓하여 우러 밤길 녜놋다. -왕방연-
* 간 밤의 우던 여흘 슬피 우러 지내여다.
이제야 생각하니 님이 우러 보내도다.
져 물이 거스리 흐르고져 나도 우러 녜리라. -원호-
* 눈 마저 휘여진 대를 뉘라셔 굽다턴고.
구불 절이면 눈 속에 프를소냐.
아마도 세한고절은 너뿐인가 하노라. -원천석-
* 철령 높은 봉에 쉬어 넘는 저 구름아,
고신 원루를 비삼아 띄어다가,
님 계신 구중 심처에 뿌려 본들 어떠리. -이항복-
* 풍상이 섯거 친 날에 갓 픠온 황국화를
금분에 가득 다마 옥당에 보내오니,
도리야 곳이오냥 마라, 님의 뜻을 알괘라. -송순-
* 유란이 재곡하니 자연이 듯디 죠해.
백운이 재산하니 자연이 보디 죠해.
이 즁에 피미일인(彼美一人)을 더옥 닛디 몯하얘. -이황-
* 피미일인; 임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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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과정 -정서-
내 님믈 그리아와 우니다니 / 산 졉동새 난 이슷하요이다.
아니시며 그츠르신 달 / 아으 잔월 효성이 아라시리이다.
넉시라도 님은 한데 녀져라. / 아으, 벼기더시니 뉘러시니잇가.
과도 허물도 천만 업소이다. / 말힛마리신뎌, 슬읏븐뎌. 아으,
니미 나를 하마 니즈시니잇가 / 아소, 님하 도람 드르샤 괴오쇼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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