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문학 : 하루 한 문장

좋은시(광야에와서,생명의서,바위)

광야에 와서



흥안령 가까운 북변(北邊)의

이 망막한 벌판 끝에 와서

죽어서 뉘우치지 않으려는 마음 위에

오늘은 이레째 암수의 비 내리고

내 망난이에 본받아

화툿장을 뒤치고

담배를 눌러꺼도 마음은 속으로 끝없이 울러노니

아아 이는 다시 나를 과실(過失) 함이러뇨.

이미 온갖을 저버라고

사람도 나는 접어 주지 않으려는 이 자학(自虐)

의 길에

내 열 번 패망의 인생을 버려도 좋으련만

아아 이 회오(悔悟)의 잃임을 어디메 호읍(號泣)

할 곳 없어

말없어 자리를 일어 나와 문을 열고 사면

정거장도 2백 리 밖

암담한 전창에 갇힌 철벽 같은 절망의 광야!






-------------------------------------------------------------------



생명의 서



나의 지식이 독한 회의를 그하지 못하고

내 또한 삶의 애증을 다 짐지지 못하여

병든 나무처럼 생명이 부대낄 때

저 머나먼 아라비아의 사막으로 나는 가자.

거기는 모래 속에 사멸한 영겁 허적(虛寂)에

오직 알라의 신만이

밤마다 고민하고 방황하는 열사(熱沙)의 끝.

그 열렬한 고독 가운데

옷자락을 나부끼고 호올로 서면

운명처럼 반드시 '나'와 대면하게 될지니

하여 '나'란, '나'의 생명이란

그 원시의 본연한 자태를 다시 배우지 못하거든

차라리 나는 어느 사구(沙丘)에 회한 없는 백골

을 쪼이리라.






---------------------------------------




바위



내 죽으면 한 개 바위가 되리라.

아예 애련(愛憐)에 물들지 않고

희로에 움직이지 않고

비와 바람에 깍이는 대로

억 년 비정(非情)의 함묵에

안으로 안으로만 채짝질하여

드디어 생명도 망각하고

흐르는 구름

머언 원뢰(遠雷)

꿈 꾸어도 노래하자 않고.

두 쪽으로 게뜨려져도

소리하지 않는 바위가 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