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야에 와서
흥안령 가까운 북변(北邊)의
이 망막한 벌판 끝에 와서
죽어서 뉘우치지 않으려는 마음 위에
오늘은 이레째 암수의 비 내리고
내 망난이에 본받아
화툿장을 뒤치고
담배를 눌러꺼도 마음은 속으로 끝없이 울러노니
아아 이는 다시 나를 과실(過失) 함이러뇨.
이미 온갖을 저버라고
사람도 나는 접어 주지 않으려는 이 자학(自虐)
의 길에
내 열 번 패망의 인생을 버려도 좋으련만
아아 이 회오(悔悟)의 잃임을 어디메 호읍(號泣)
할 곳 없어
말없어 자리를 일어 나와 문을 열고 사면
정거장도 2백 리 밖
암담한 전창에 갇힌 철벽 같은 절망의 광야!
-------------------------------------------------------------------
생명의 서
나의 지식이 독한 회의를 그하지 못하고
내 또한 삶의 애증을 다 짐지지 못하여
병든 나무처럼 생명이 부대낄 때
저 머나먼 아라비아의 사막으로 나는 가자.
거기는 모래 속에 사멸한 영겁 허적(虛寂)에
오직 알라의 신만이
밤마다 고민하고 방황하는 열사(熱沙)의 끝.
그 열렬한 고독 가운데
옷자락을 나부끼고 호올로 서면
운명처럼 반드시 '나'와 대면하게 될지니
하여 '나'란, '나'의 생명이란
그 원시의 본연한 자태를 다시 배우지 못하거든
차라리 나는 어느 사구(沙丘)에 회한 없는 백골
을 쪼이리라.
---------------------------------------
바위
내 죽으면 한 개 바위가 되리라.
아예 애련(愛憐)에 물들지 않고
희로에 움직이지 않고
비와 바람에 깍이는 대로
억 년 비정(非情)의 함묵에
안으로 안으로만 채짝질하여
드디어 생명도 망각하고
흐르는 구름
머언 원뢰(遠雷)
꿈 꾸어도 노래하자 않고.
두 쪽으로 게뜨려져도
소리하지 않는 바위가 되리라.
'문학 : 하루 한 문장'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감동적인 글귀 (0) | 2020.12.05 |
---|---|
좋은시(유치환-설일,꽃,들꽃과같은,뜨거운노래는땅에묻는다,귀고) (0) | 2020.12.04 |
좋은시 유치환 - (그리움,일월,처량가) (0) | 2020.12.02 |
좋은시(춘신,행복) (0) | 2020.12.01 |
좋은시(기다림,길,가던길멈추고,시조,정과정) (0) | 2020.11.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