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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 하루 한 문장

좋은 시(벚꽃피는밤, 기도,나보다먼저그대를사랑하겠습니다,나그렇게당신을사랑합니다,사랑이란)

벚꽃 피는 밤 정태현

 

 

벚꽃 만개한 날 밤

하늘 가득 달님도 만월인데

완숙한 봄밤의 고요는 깊어가고

 

잠들면

이대로 좋은 꿈이라도 있을 것 같은 황홀함이

어둠의 적막을 타고

개울마냥 흐를 때

야간열차의 기적소리가

벽창호를 가르듯

긴 여운을 남기면...

 

아무데도 마음 줄데 없는

나는 어이해

행여나 저 꽃잎 흩날릴까

마음 졸여

온밤을 홀렸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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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 도 - 김옥진


소유가 아닌 빈 마음으로 사랑하게 하소서
받아서 채워지는 가슴보다
주어서 비워지는 가슴이게 하소서
지금까지 해왔던 내 사랑에
티끌이 있었다면 용서하시고
앞으로 해나갈 내 사랑은
맑게 흐르는 강물이게 하소서

위선보다 진실을 위해
나를 다듬어 나갈 수 있는 지혜를 주시고
바람에 떨구는 한 잎의 꽃잎일지라도
한없이 품어 안을
깊고 넓은 바다의 마음으로 살게 하소서
바람 앞에 스러지는 육체로 살지라도
선(善)앞에 강해지는 내가 되게 하소서
크신 임이시여
그리 살게 하소서

철저한 고독으로 살지라도
사랑 앞에 깨어지고 낮아지는
항상 겸허하게 살게 하소서 크신 임이시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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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보다 먼저 그대를 사랑하겠습니다 - 유미성


이 세상에서 마지막으로
나를 안아 주신 사람입니다

내 눈물 닦아주시며
가슴으로 함께 울어 주신 사람입니다

보잘것없는 내 삶 속으로 들어와
작은 등불 하나 밝혀 주신 사람입니다

눈부신 세상이 있다는 걸
처음으로 느끼게 해주신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이기에
내 목숨 버려야 해도 그대를 사랑하겠습니다

그런 사람이기에
나보다 먼저 그대를 사랑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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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그렇게 당신을 사랑합니다 - 한용운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는
사랑한다는 말을 안 합니다.
아니하는 것이 아니라
못하는 것이 사랑의 진실입니다.

잊어버려야 하겠다는 말은
잊을 수 없다는 말입니다.
정말 잊고 싶을 때는 말이 없습니다.

헤어질 때 돌아보지 않는 것은
너무 헤어지기 싫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헤어지는 것이 아니라
같이 있다는 말입니다.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 웃는 것은
그만큼 행복하다는 말입니다.

떠날 때 울면 잊지 못하는 증거요
뛰다가 가로등에 기대어 울면
오로지 당신만을 사랑한다는 증거입니다.

잠시라도 같이 있음을 기뻐하고
애처롭기까지 만한 사랑을 할 수 있음에 감사하고

주기만 하는 사랑이라 지치지 말고
더 많이 줄 수 없음을 아파하고

남과 함께 즐거워한다고 질투하지 않고
그의 기쁨이라 여겨 함께 기뻐할 줄 알고

깨끗한 사랑으로 오래 기억할 수 있는
나 당신을 그렇게 사랑합니다.

"나 그렇게 당신을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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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란 - 양현근


키큰 나무와 키작은 나무가 어깨동무하듯
그렇게 눈 비비며 사는 것
조금씩 조금씩 키돋음하며
가끔은 물푸레나무처럼 꿋꿋하게
하늘 바라보는 것
찬서리에 되려 빛깔 고운
뒷뜨락의 각시감처럼
흔들리지 않게 노래하는 것
계절의 바뀜을
누구보다 먼저 알아채는 것
새벽길, 풀이슬, 산울림 같은
가슴에 남는 단어들을
녹슬지 않도록 오래 다짐하는 것
함께 부대끼는 것
결국은 길들여지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