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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 하루 한 문장

국어시간에 시읽기

내 마음은 <김동명>

나는 호수요 그
대 저어오오
나는 그대의 흰 그림자를 안고
옥같은 그대의 뱃전에 부서지리라

나는 촛불이요. 그대 저 문을 닫아주오
나는 그대의 비단 옷자락에 떨며
최후의 한방울도 남김없이 타오리다

내 마음은 나그네요
그대 피리를 불어 주오.
나는 달 아래 귀를 기울이며
호젓이 나의 밤을 새이오리다

내 마음은 나그네요
잠깐 그대의 뜰에 머물게 하오
이제 바람이 일면 나는 또 나그네같이, 외로이
그대를 떠나오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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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록 <서정주>


어이 할꺼나
아, 나는 사랑을 가졌어라
남몰래 혼자서 사랑을 가졌어라

천지엔 이미 꽃잎이 지고
새로운 녹음이 다시 돋아나
또 한 번 날 에워싸는데

못견디게 서러운 몸짓을 하며
붉은 꽃잎은 떨어져 내려
펄펄펄 떨어져 내려

올해도 내 앞에 흩날리는데
부르르 떨며 흩날리는데

아, 나는 사랑을 가졌어라
꾀꼬리처럼 울지도 못할
기찬 사랑을 혼자서 가졌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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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위<유치환>

내 죽으면 한 개 바위가 되리라.
아예 애련에 물들지 않고
희로에 움직이지 않고
비와 바람에 깎이는 대로
억년 비정의 함묵에
안으로 안으로만 채찍질하여
드디어 생명도 망각하고
흐르는 구름
머언 원뢰
꿈 꾸어도 노래하지 않고
두 쪽으로 깨뜨려져도
소리하지 않는 바위가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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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南)으로 창(窓)을 내겠소<김상용>


남(南)으로 창(窓)을 내겠소
밭이 한참갈이
괭이로 파고
호미론 풀을 매지요

구름이 꼬인다 갈 리 있소
새 노래는 공으로 들으랴오
강냉이가 익걸랑
함께 와 자셔도 좋소

왜 사냐건
웃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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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많은것을 알고있다 <김종완>


아침에 그녀는 꼭 커피를 마신다.
밀크가 아닌 블랙으로 두 잔
그녀는 화요일과 금요일에 목욕을 한다.
그녀는 말하기 전에 항상 "응"이라고 말한다.
지금 내 뒷자리에 앉아 잠시 창 밖을 내다보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리고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난 알고 있다.
그녀는 하기 싫은 일을 부탁받을 때는 그냥 웃는다.
그리고 내색을 안 하는 그녀지만 기분이 좋으면
팔을 톡톡 두 번 건드리며 이야기를 건넨다.
그녀의 집은 10시가 되기 전 모두 잠이 든다.
그래서 그녀와 밤늦게 통화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녀는 바지보다는 치마를 좋아하며 연분홍을 좋아한다.
긴 머리는 아니지만 적당히 항상 머리를 기르고 다니며
수요일까지는 밤색 머리띠를,주말까지는 흰색 머리핀을 하고 다닌다.
표준어를 잘 쓰지만 이름을 부를 때만은 사투리 억양이 섞인다.
그리고 반가운 사람의 이름을 두 번 부른다는 것도 난 알고 있다.
도서관 저쪽 편에서 그녀가 지금 일기를 쓰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리고 난,그리고 난,
.....
......
......그녀가 날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도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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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그대로의 사랑 낭독<유재하>




내가 당신을 얼마만큼 사랑하는지 당신은 알지 못합니다
이른 아침, 감은 눈을 억지스레 떠야하는 피곤한 마음속에도
나른함속에 파묻힌채 허덕이는 오후의 앳된 심정속에도
당신의 그 사랑스러운 모습은 담겨 있습니다.

내가 당신을 얼마만큼 사랑하는지 당신은 알지 못합니다.
층층계단을 오르내리며 느껴지는 정리할수 없는 감정의 물결속에도
십년이 훨씬 넘은, 그래서 이제는 삐걱대기까지 하는 낡은 피아노.
그 앞에서 지친 목소리로 노래를 하는 내 눈속에도
당신의 그 사랑스러운 마음은 담겨 있습니다.

내가 당신을 얼마만큼 사랑하는지 당신은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언젠가는 당신도 느낄수 있겠죠.
내가 당신을 얼마만큼 사랑하는지 당신도 느낄수 있겠죠.
비록 그날이
우리가 이마를 맞댄채 입맞춤을 나누는 아름다운 날이 아닌
서로가 다른 곳을 바라보며
잊혀져가게 될 각자의 모습을 안타까워하는
그런 슬픈 날이라 하더라도
나는 후회하지 않습니다.
내가 당신을 얼마만큼 사랑하는지 당신은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건
당신께 사랑을 받기 위함이 아닌
사랑을 느끼는 그대로의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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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밤 <독일의 아이헨도르프>

마치 하늘이
땅에 조용히 입맞춤하여
땅이 아연한 꽃빛 속에서
이제 하늘을 향해 꿈꾸지 않을 수 없다는 듯.

바람이 들판을 스쳐 지나가면
아삭들은 조용히 물결쳤고
숲은 나즉이 속삭였다.
그처럼 별도 또렷했던 밤.

나의 영혼은
활짝 나래를 폈고
마치 집으로 날아가듯
조용한 대지를 지나 날아갔다.


끝없는 강물이 흐르네 <김영랑>


끝없는 강물이 흐르네.
내마음의 어딘 듯 한 편에 끝없는
강물이 흐르네.
돋쳐 오르는 아침 날 빛이 빤질한
은결을 도도네.
가슴엔 듯 눈엔 듯 또 핏줄엔 듯
마음이 도른도른 숨어 있는 곳
내 마음의 어딘 듯 한편에 끝없는
강물이 흐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