찻숟갈 - 박목월
손님이 오시면
찻잔 옆에
따라 나오는 보얗고 쬐그만
귀연 찻숟갈.
"손님이 오시면
찻숟갈처럼 얌전하게
내 옆에 앉아 있어."
아버지가 말씀하셨다.
"네, 아버지."
나는
대답도 찻숟갈처럼
얌전하게 했다.
보얗고 쬐그만 귀연 찻숟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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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모스 - 박경용
무얼 먹고 저리도
키가 컸을까?
하늘 먹고 컸겠지.
바람 먹고 컸겠지.
무얼 발라 얼굴은
저리 이쁠까?
햇발 발라 이쁘겠지.
달빛 발라 이쁘겠지.
하늘 먹고
바람 먹고
나보다 키클라...
햇발 발라
달빛 발라
나보다 이쁠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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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월이 온다 - 홍우희
칠월이 아직 사는
연립 우리집 마당
개구쟁이 쓰르라미
쓰쓰 쓰르렴 쓰쓰 쓰르렴
잔소리를 자꾸만
여기저기 늘어놓고
경비아저씨 대빗자루
오냐 그래 알았다
싹싹 쓸겠다 싹싹 쓸겠다
새로 오는 팔월을
단장하고 반길 테다
꽃을 떨어낸 열매들아
방학을 맞은 아이들아
크게 튼튼하게
웃으며 자라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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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의 여름 - 차영섭
여름엔 하늘도 힘드실 거예요
사람들은 덥다고덥다고 피서를 가는데
하늘은 꼭 해야만 될 일이 있거든요
산에 산에 나무들도 키워야겠고
밭에 밭에 열매들도 익혀야 하니까요.
햇살 속에 물감이랑 설탕이랑 몰래 숨겨서
과일에게 곱게곱게 색칠도 해주고
듬뿍듬뿍 설탕을 뿌려줘야 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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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눈과 마을과 - 박두진
눈이 덮인 마을에
밤이 내리면
눈이 덮인 마을은
하얀 꿈을 꾼다.
눈이 덮인 마을에
등불이 하나
누가 혼자 자지 않고
편지를 쓰나?
새벽까지 남아서
반짝거린다.
눈이 덮인 마을에
하얀 꿈 위에
쏟아질 듯 새파란
별이 빛난다.
눈이 덮인 마을에
별이 박힌다.
눈이 덮인 마을에
동이 터오면
한개 한개 별이 간다.
등불도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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